내가 그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스물아홉살이었다. 당시 나는 영국의 한 다큐멘터리 프로덕션에 소속된 촬영감독 어시스턴트로 일하고 있었다. 그해 여름 나와 나의 팀은 1737년 금괴를 싣고 아라비해에 침몰한 영국상선 인양작업을 촬영하기 위해 인도의 뭄바이에 수개월간 머물고 있었다./ 우린 뭄바이 시내의 작은 외국인 클럽에서 처음 만났다. 그는 바의 한 구석에 홀로 앉아 만취한 프랑스 관광객들이 왁자지껄 떠들며 당구치는 모습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. 짙은 담배연기와 술 향기 사이로 간간이 그와 나의 눈이 마주쳤다. 관광객 중 한명과 인도인 청년 사이에 시비가 붙는 바람에 한 바탕 소동이 일어났고 난 와중에 그가 있는 곳까지 떠밀려갔다./ 그는 한국국적 참치잡이 어선의 부주방장으로 일하고 있으며 다음날이면 뭄바이를 떠난다고 말했다. 우린 많은 인도산 위스키를 마셨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. 그날따라 유난히 서늘한 바람이 밤하늘을 메우고 있었다./ 나는 작은 스케치북과 연필을 꺼내어 그를 그리기 시작했다. 우린 많이 취해 큰 소리로 웃으며 부둣가를 거닐었다. 그는 예술가 지망생이었다고 한다. 밴드활동을 하기도 했으며 꽤 많은 시를 썼다고도 했다. 한때 미술관에서 디자이너로 일하기도 했다는 그는 짝사랑하는 여자에게 자신이 그토록 평범하고 지루한 사람만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어느날 갑자기 배를 탔다고 했다./ 그리고 그렇게 5년이 흘렀다고 한다. 우린 짧은 입마춤을 나누었다. 난 홀로 노래를 흥얼거리며 춤을 추었고 그는 여전히 조용한 눈으로 나와 나의 하늘색 원피를 바라보고 있었다. 부두 위로는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물체가 날고 있었고 다음날 그가 뭄바이를 떠났다. /3년 뒤 케미컬 브라더스의 한국 공연 다큐멘터리를 촬영하기 위해 서울을 찾았을 때 우리 우연히 다시 만났다. 그는 여전히 하얀 손과 조용한 눈빛을 가지고 있었다. 우린 그의 자그만한 작업실에서 술을 마시며 서로를 안았다. 그는 어색한 듯 잠시 미소를 지었고 나는 불을 끄기를 원했다. 그는 스탠드를 끝 뒤 비디오를 작동시켰다. 그는 어색한 듯 잠시 미소를 지었고 나는 불을 끄기를 원했다. 그는 스탠드를 끈 뒤 비디오를 작동시켰다. 모니터가 밀어내는 하얀 입김들이 그와 나의 맨몸 위로 반사되고 있었다. 일정한 리듬으로 흔들거리던 그의 어깨너머로 내가 보고 있던 영상은 2001: A SPACE ODDYSSEY의 한 장면이었다. 성냥을 건네며 그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. "물체는 멀어질수록 작게 보이는 것이 아니에요. 정말 작아지는 것이죠, 우리 모두 속아왔어요."/ 거대한 도시의 미세한 영혼들 위로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작은 비행물체가 떠나니고 있었다. 우린 모두 속아왔어요, 우리 모두 속아왔어요./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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